오늘은 2008년 11월 13일(木) 이다. 2009 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기도 하고 2008년 11월 옵션 만기일이기도 한 날이다. 내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본 것이 1994년 이다. 2008년 현재로부터 14년 전이다. 가끔 이런 숫자를 계산하다가 깜짝 놀라곤 한다. 마음은 아직도 대학교 1학년 인데 내가 수능을 본 것이 14년 전이라니.

 2008년의 나는 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한민국에 있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직장인이다. 평일은 회사에서는 업무, 퇴근해서 집에 와서는 인터넷 서핑, TV 시청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주말(토/일)에는 보통 집에서 빈둥대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보니 주말에는 혼자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나의 생각의 주제는 그 폭이 그리 넓지는 않다. 나의 미래의 모습, 나의 나아가야 할 길, 한국의 미래 트렌드, 건강 관리 등이 그것들이다.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은 정말로 괴로운 일이다. 그것을 아는 이유는 내가 지금 그러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중, 고등학교 때까지는 대학 입학이라는 목표를 갖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며 살아왔다.

  보통 사람들은 대학교 때부터는 자신이 목표를 정하고 그에 따른 계획을 만들어서 생활한다. 하지만 나는 좀 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대학교 때부터 확고한 목표가 없는 삶을 살았다. 유학을 생각하긴 했지만 확고한 목표는 아니었기 때문에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는 단계까지는 연결이 안되었다. 유학도 어떠한 다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유학 준비를 열심히 해서 유학을 갔겠지만 그러한(유학을 수단으로 이루고자 했던) 목표 역시 없었다. 나는 대학교 때부터 확고한 목표가 없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좋게 말하면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생활이다. 유유자적하다는 것은 속세를 떠나 아무 속박 없이 조용하고 편안하게 사는 것을 뜻한다. 물론 내가 속세를 떠나 산 것은 아니다. 속세에 있었지만 나는 비교적 속박없이 편안한 삶을 살았다. (그 시간에서 대학원 시절의 2년(1999년~2001년 2월 28일)은 제외된다. 대학원 시절의 2년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괴로운 시간이었다.)
 
 나쁘게 보면 나는 대학교 시절 이후의 삶을 헛살았다.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 다니며 시간을 낭비한 셈이다. 당연히, 그렇게 내가 그 때 이끌린 사람들이 지금의 나에게 보상을 해주지는 않는다.

 나는 순진했다. 지금도 순진하다. 순진하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아래와 같이 나온다.

 1. 마음이 꾸밈이 없고 순박하다.
 2. 세상 물정이 어두워 어리숙하다.

 나는 두 가지에 다 해당되니 순진하다 라는 형용사는 나를 묘사하는 데 아주 적격이다.

 요즘의 나는 돈의 위력에 대해 계속 놀라며 그(or 그녀)를 경배하는 중이다. (돈을 의인화 한다면 남자가 더 어울릴지 여자가 더 어울릴지...) 내가 생각하는 돈의 위력은 크게 2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돈이 많다면 내가 소중히 여기는 존재(사람과 사람이 아닌 존재 모두를  포함) 에게 질 좋은 것들을 많이 베풀어 줄 수 있다.

 내가 사랑했던 어머니에게, 추운 계절이 돌아오면 뿌리만 남아야 하는 바나나 나무에게, 내가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고 용기를 주고 도와주며 이런저런 대화를 할 수 있는 나의 친구들에게...

2. 돈은 내가 진정한 고고한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아무도 답을 주지 않는 나의 힘으로만 풀어야 하는, 나 밖에는 풀 수 없는 문제다. 이 문제를 풀면서 나의 삶이 진행되고 완성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전혀 갈피를 잡고 있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꽤 괴롭다.

 내가 확실하다고 알고 있는, 답에 대한 귀뜸에 해당하는 것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자세를 갖는 것에는 아무런 고민이 없다. 문제는 적극성이다. 무엇에 대한 적극성을 가져야 한단 말인가. 그 무엇이 지금의 나에게는 없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을 읽으면서 상당히 놀란 적이 있다. '데미안' 의 주인공 싱클레어가 하는 고민이 나의 그것과 너무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언어로 정리하지 못하고 내면으로만 갖고 있던 그런 생각을 헤르만 헤세는 소설 '데미안' 에서 싱클레어의 입으로 명확히 언어로서 정리하였다.

  2008년.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지구 멸망의 해 1999년에서 9년이나 지난 지금. 복잡하게 돌아가는 지금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나의 길을 정하고 걸어가야 할까. 더 이상 윤동주의 '序詩' 가 삶의 나침반이 될 수 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세상이 구효서의 소설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의 그러한 절(또는 그 절이 있는 마을) 같으면 좋으려만.

Posted by 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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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08.11.13 22:32

 글을 쓰고 싶어져서 글을 쓰려 한다. 칼럼 형식으로 생각하고 있다. 칼럼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나의 느낌으로 알고 있는 그러한 칼럼을 뜻한다.
 
 나는 대화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좋은 대화 상대가 내 곁에 자주 있는 것은 아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말보다 글이 좋다. 그래서 나는 의사 소통의 도구로 글을 선택하였다.

 가능하면 매일 글을 쓰겠다.

 


Posted by 담연